[오늘 해 본 생각] : 새해 그리고 Beyond

영어 농담입니다. 할머니 셋이 걸어갑니다. It’s windy today!라고 왼편 할머니가 말합니다. No, it’s not, it’s Thursday라고 중간 할머니는 말했고, 그 말을 받아 오른편 할머니는 So am I, let’s go have a beer라고 대꾸를 합니다. (귀가 어두워 한 할머니는 windy를 Wednesday로, 다른 할머니는 Thursday를 thirsty로 알아들어 일어난 해프닝입니다. ㅋ) 

이상하지요? 천년, 만년을 사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몇 년 전 일어난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2012년을 예로 들어볼까요? 정말 대단한 해였습니다. 재스민 혁명이 일어난 해인데 재스민은 튀니지아의 국화입니다. 노점상 청년 부아지지의 분신자살을 계기로 고통받던 튀니지아의 시민들이 봉기를 일으켰고, 그 여파는 알리 대통령을 시작으로 (튀니지아, 23년 집권), 2월에는 무바라크 (애굽, 30년 집권), 8월에는 카다피(리비아, 42년 집권)를 축출시켰습니다. 살레 예멘 대통령은 11월 권력 이양안에 서명해야 했고,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도 퇴진 압박을 받았습니다. 

재앙이 있었습니다. 3·11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기억하시지요? 재정 악재도 있었습니다. 그리스와 아일랜드가 EU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촉발된 재정 위기 여파로 12년 11월 4일 그리스 파판드레우 총리 사임, 12일 이태리 베릴루스 코니 총리 사임, 그리고 20일에는 스페인 총선에서 집권 사회당 참패 등 남유럽 정권 지각대변동이 있었습니다. 

그 해 9월, ’우리는 99%! 탐욕의 1%를 비난한다!’하면서 뉴욕 월가에 나타난 반자본주의 시위의 영향력은 80여개국으로 번졌습니다. 여기에 5천 2백만불 현상금이 붙었던 빈 라덴, 애플 컴퓨터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 및 이북 김정일의 사망도 포함시켜야 하겠죠? 정말 대단한 해였습니다.

6년이 지난 18년에는 무엇이 달라져 있었을까요? 이제는 내셔널리스트와 글로벌리스트의 전쟁이고, 트럼프 미국대통령 시대입니다. 그의 이야기에는 캐버너 연방대법원 판사임명, 미-중 G2 무역전쟁, 유럽연합과의 관세 폭탄, 미대사관 예루살렘 이전, USMCA로 바뀐 옛 NAFTA, 이란 핵합의 탈퇴 및 시리아 철군에 캐러밴과 국경장벽 예산 편성 등을 포함해야 할 것입니다. 

트럼프 이야기로만 끝나면 섭섭해 할 사람들도 있겠지요? 물론 세계는 시진핑, 푸틴, 에르도안, 보우소나루, 메르켈, 마크롱, 그리고 메이에 이어.. 그 명성에 있어서는 이들 보다는 한수 아래이지만 살비니, 빅토르, 빈살만, 아웅산 수지 및 모하맛, 여기에 남북한 상황도 조금씩은 다 압니다. 

급변하는 세상사입니다. 다음 해 19년에는, 아니 또 다른 6년쯤 후에는 어떤 인물과 사건이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될까요? 질문합니다. 양극 즉 폭죽을 터뜨리며 년말 카운트다운 파티를 한다면, 반대로 산정상이나 바닷가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기운을 경건한 마음으로 받는다면, 우리는 밤새 세상을 덮은 virgin snow 위를 걷는 것처럼 새해를 새롭게 맞을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라고 신자들에게 명령합니다. 네 가지 요점이 있습니다. 첫째,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에서 ‘그러므로’는 지금까지 말한 것의 논리적 결론인데 바울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기독교 교리와 실천의 연관성으로 아는만큼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라입니다. 손과 발이 가슴과 다르게 행동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입니다. ‘항상’이고 ‘더욱’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에 주님의 이름이 연관되기에 그가 명령하신 것, 요구하신 것, 부르신 것에 지금보다 더 열심히 부름 받은 소명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넷째, 이는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알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회개, 죄용서, 부활, 천국, 영생을 설명해주고, 신자의 신앙에는 실한 내용으로 뼈대를 세워주고 내용을 채워주는 일들은 결코 무익하거나 값싼 일이 아닙니다. 이 명령은 생각해 보면 살아온 방향을 바꾸라고 하는 것보다는 이전에 해오던 일에 다만 ‘더욱 힘쓰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의 첫 대면은 애굽이 아니라 미디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대화 내용이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라고 시작되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십니다.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근심을 아시고, 그들을 위해 행동하십니다. 모세를 그 일에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끄십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애굽에서 일어나던 일을 ‘분명히’ 보시고, 들으시고, 아시고, 그리고는 행동하시기 위해 미디안에 있던 모세를 부르셨던 여호와 하나님은 오늘날 세상 돌아가는 일도 아실까요? 고통 받고, 부르짖고, 근심하는 이들의 짐을 덜어주는 일에 우리도 부르실까요?

주변을 둘러보면 그렇게나 할 일이 많습니다. 주 안에서 가치있는 일을 당신은 발견하셨습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의도만 좋지 사실 많이 약합니다. 우리는 복을 줄 수도 있어야 합니다. 모세를 부르셨던 여호와 하나님은 이 시대에 있어 우리도 복 주는 사람이 되도록 부르십니다. 

Windy에서, Thursday, 그리고 beer로 이어지던 할머니들의 대화 기억하시죠? 청력이나 시력이 많이 약해지기 전에, 손발이 떨리기 전에, 주 안에서 발견한 가치있는 일에 ‘제가 여기 있습니다. 더욱 힘쓰겠습니다!’ 다짐하는 참 좋은 ‘많은’ 새해 아침들이 우리에게 주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