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해 본 생각] : 그리스도의 부활

이성의 한계점

사도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신자들의 신앙은 헛되고 죄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기에 그는 순교도 영광으로 간주했습니다. 사도 시몬은 인도에서 십자가형으로 순교했고, 사도 바돌로매는 아라비아에서 가죽이 벗겨지며 순교했고, 사도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습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것은 흔한 일일 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부활은 불가능하기에 진실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니버Niebuhr의 ‘부활과 역사적 이유Resurrection and Historical Reason’에는 불트만Bultmann, 다드Dodd, 낙스Knox, 벌크할트Burkhardt, 스트라우스Strauss, 헤르만Hermann 등의 딜렘마가 소개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을 부인하고 싶지만 성경에서 발견되는 사도들의 가르침은 결코 초대교회의 도전할 수 없는 도그마dogma나 소수 특정인의 생각으로 제한되지 않는, 부활사실을 언급하는 사도들을 포함해 동시대에 살았던 오백명이나 되는 다른 신자들의 공통된 체험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 무브먼트historical movement가 됩니다. 이것은 당연히 역사의 한장면입니다. 

2천년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역사성을 언급하는 직접적 문헌들로는 신약과 요세푸스의 ‘고대 유태인들Jewish Antiquities’, 또 타시투스Tacitus의 ‘연대기Annals’가 있습니다. 간접적으로는 ‘탈무드’가 예수의 역사성을 증명합니다.

부정확한 학설들

1. 조작설: 19세기 중반 바우어Bauer는 복음서들은 2세기에 쓰여졌기에 모순이 있고 부활은 교회가 만들어낸 상상력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만든 상상력 때문에 순교로 끝날 것을 알면서 전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또한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에 쓰여진 요한복음 17장 복사본이 애굽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요한복음은 연대적으로 볼 때 4복음서 중에서 가장 늦게 쓰여진 책입니다. 애굽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원본이 아니라 복사본이라는 것이고 복사본의 연대가 1세기 말이라면 원본은 1세기 초에서 중간에 쓰여졌다는 결론입니다.

2. 이방종교 모방설: 젠슨Jensen은 기독교 부활을 바벨로니아의 ‘길가메쉬 서사시Gilgamesh Epic’나 ‘이쉬타 하강Descent of Ishtar’의 변형이라고, 로벗슨Robertson은 바벨로니아 보다는 그레꼬-로망 문화 및 신화에서 따온 것으로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매해 겨울이면 죽었다가 봄이면 소생하는 자연신화들과 단 한번once and for all 죽음에서 부활함으로 영원히 다시 죽음을 맛보지 않는 기독교 부활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기독교 시작은 몇천년 구전으로 내려오는 토속 사건들이 새롭게 의미를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와 동시대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3. 빈무덤설들

3-1: 누가 예수의 시신을 옮겼는가?의 질문에 있어 터툴리안의 변증론Apology에는 예수의 제자들이 스승의 시체를 몰래 훔쳤다라고 당시 유태교 지도자들이 이렇게 소문을 흘렸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두가지 의문이 듭니다. 첫째, 당시 무덤을 지키던 로마 군인들을 죽이고 스승의 시신을 가져올 무드가 제자들에게 조성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둘째, 부자 요셉에 의해 잘 안치된 무덤에서 스승의 시신을 빼내어 가난한 제자들이 그보다 못한 무덤에 재매장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3-2: 클라우스너Klausner는 그 무덤의 원주인인 아리마대의 요셉이 부활절 전날밤이나 당일 이른 새벽에 예수의 시신을 옮겼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요셉은 로마 당국의 승인 없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또 부활소식으로 온 예루살렘이 들썩거릴 때 요셉은 침묵할 수 있었을까요?

3-3: 레이크Lake는 예루살렘 길에 익숙하지 않은 여인들이 슬픔에 잠겨 새벽에 예수의 무덤을 잘못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랬다면 이스라엘의 최고 기관인 산헤드린이 나서든지 제자들도 조사를 했겠지요? 복음서들에 의하면 사도들조차 여인들의 보고를 믿지 않았습니다. 

3-4: 벤트리니Venturini는 가사설이라고 해서 큰 충격으로 기절했던 예수가 시원한 동굴습기에 재정신을 찾고 동굴무덤을 막은 돌을 굴린후 밖으로 나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초죽음이 된 사람을 신으로 모실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고 예수의 역사적 부활을 부인하는 스트라우스도 이 설의 부당함을 지적합니다.

4. 부활후 예수의 출현

4-1: 스트라우스Strauss와 레난Renan은 주관적 환상설Subjective-vision theory을 주장했습니다. 예수를 너무 고대한 나머지 제자들이 예수가 부활하고 자신들을 찾아온 것같은 환상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그랬을까요? 개인에게 주관적 체험이 가능할 수는 있지만 집단이 동시에 동일한 예수의 모습과 음성을 들을 수는 없습니다. 더우기 당시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고대하며 기다리지 않았고 오히려 부활모습을 대하고는 놀랐습니다. 500명 이상이 동일한 예수의 부활후 목격담을 증언합니다.  

4-2: 카임Keim은 ‘하늘로부터 온 전보Telegram from heaven’라고 해서 실제로 나타난 것은 부활후 예수의 육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직도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위해 환상을 보여주었다고 주장합니다. 절대적 진리를 가르치는 기독교의 시작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거짓이었을까요?

5. 편집비평Redaction criticism의 막슨Marxen은 부활후 출현의 지형적 조화를 질문합니다. 마태복음 28장과 마가복음 16장은 출현장소를 갈릴리로 지정하는 한편 누가복음과 요한복음 20장은 예루살렘이 부활출현 장소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해리슨Harrison의 지적처럼 예수는 부활후 지상에 40일이나 머무셨습니다. 흩어진 제자들을 찾아 예루살렘과 갈릴리 지역을 순회하시며 재회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입니다. 누가복음 24장에 기록된 승천과 연결된 마지막 출현장소가 베다니임을 미루어 볼 때 북부지방에서 돌아오셨음이 분명합니다. 

6. 양식비평Form criticism의 불트만Bultmann에게 있어 순수 역사는 모호하며, 상대적이고, 닫혀진 상태에서 인과관계의 연속에서 유일무이한 요소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바이스Weiss, 헤르만Herrmann, 발트 Barth및 하이데거Heidegger의 영향을 받은 그는 자신의 실존을 이해할 수 있을 때만 역사를 직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저서 ‘초대 기독교Primitive Christianity’에서 역사학자의 과제를 역사의 움직임을 다각적으로 관찰하며 인간실존 과정을 이해분석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역사적 사건들은 그 사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그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무슨 뜻입니까? 그에게 있어 부활의 의미란 예수의 십자가에 의한 구원의 능력을 통한 신앙의 상승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할 때만 비로소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고통과 죄로부터 오는 불완전한 자유도 있지만 논리적으로 부활 신앙 안에서 참 자유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힘을 주는 십자가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예수의 죽음은 다른 사람의 죽음과 다를 바가 없지만 구원의 힘을 주는 십자가의 의미는 그리스도가 죽음을 정복하고 그 사슬에서 신자에게 참 자유를 주는 것에서 보여집니다. 이 힘은 설교에서 우리를 만납니다. 그러하기에 부활절 신앙은 말씀 선포 속의 신앙을 의미한다고 불트만은 믿습니다. 

인간 예수의 역사적 확실성은 불트만에게 있어서는 부수적 사건에 불과합니다. 양식비평의 신봉자인 그는 ‘공관복음 전통의 역사’에서 부활을 초대교회가 포교용으로 창조한 것으로 말합니다. ‘공관복음서의 문제점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에서는 ‘마가복음에 나타난, 그리고 후에 마태와 누가에서 인용된 예수의 윤곽을 그려볼 때 이 자료들은 창조적 편집이었다고 생각된다.’하면서 불트만은 나사렛 예수와 사도들의 그리스도의 선포의 불연속성을 강조합니다.

볼프Wolf는 불트만의 실존주의적 선포가 어떻게 기독교의 선포가 될 수 있는지를 반문합니다. 그 무엇이 역사적 예수, 그에 관한 성서의 진술 및 수세기를 내려오는 그에 관한 교회의 선포에서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가 질문합니다. 제자들의 예수를 통해 얻게 된 새로운 가치관 및 삶 속의 새로운 변화들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과 신약 성서 기자들은 이런 변화들을 부활과 직접 연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그들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가 아니라 나사렛 예수 자신에게 일어난 엄청난 그 무엇이었습니다. 신약 증인들의 주요 목적은 하나님께서 예수에게 하신 사실의 선포였지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난 종교적 변화나 개인적 체험을 알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부활의 의미를 추종자들이 그를 믿게 되었고, 그를 사랑하게 되고, 그의 자유를 함께 나누게 되었다고 하면 주객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불트만 자신도 이 사실을 잘 압니다. 실존주의자 불트만과 신약 주석학자 불트만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키텔Kittel의 신약 단어 사전TDNT에는 로마서 10장 9절을 해석하는 불트만의 다음과 같은 글이 발견됩니다. ‘바울은 기독교의 핵심을 이 문장에서 파헤친다. 이 표현은 바울 자신의 특별한 개인적 개념이 아니라 모든 기독교 설교가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호모로게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피스테오에인) 구원을 얻으리라에 나오는 시인과 믿음의 두 단어는 동의어임으로 기독교 신앙은 예수를 주로 인정함과 동시에 부활의 기적을 받아드림 즉 사실이라고 믿음이 명백하다.’

부활의 역사적 기준

1. 빈무덤: 부활의 의미는 신학적 차원에서 다룰 문제지만 시신이 무덤에서 사라진 것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예수의 부활을 전했을 때 이방인들은 바울을 조롱할 수 있었지만 베드로와 요한 등이 같은 사실을 예루살렘에서 선포했을 때 예루살렘의 유태교 종교지도자들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예수의 빈무덤은 참 부활을 제외하고는 다른 가능성을 배제합니다. 그 무덤은 친구들과 적들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는 장소에 위치했기 때문입니다. 

2. 예수의 부활후 출현

2-1: 출현횟수 역시 다른 해석을 불허합니다. 복음서들에는 최소 11번이 나옵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해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살로매와 요안나, 갈릴리에서 온 다른 여인들, 베드로, 엠마오 도상에서 클레오파스와 다른 제자, 열명의 제자, 한 주 후 도마를 포함한 열한 제자, 갈릴리 호수에서 베드로 포함 일곱 제자에게, 갈릴리 어느 산에서 열한 제자에게, 500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야고보에게, 마지막으로 예수가 승천하시기 전에는 감람산에서 무려 40일 동안 자신의 부활을 나타내셨습니다. 

어째서 추종자들에게만 자신을 보이셨을까? 질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래드Ladd의 지적처럼 이들 역시 부활의 몸을 목격하기 전에는 일면 불신자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고넬료와의 대화 속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고 이 사실을 담대하게 설명합니다.

2-2: 부활 기사의 특수성들은 주목할만 합니다. 첫째, 특정 지역과 시간에 제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새벽 미명 그가 누웠던 무덤가, 저녁 시간 마가의 다락방, 오후 엠마오 도상, 아침 고기잡이가 끝난 갈릴리 등의 그 어떤 환경지배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둘째, 오백명 이상 무리가 동시에 동질의 현실을 목격했습니다. 이것은 무언가를 고대하며 집착했을 때 경험하는 개인적 환각 상태와는 다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가 쓰여질 당시 그 중 반 이상이 생존해 있다고 사도 바울은 증언합니다. 셋째, 증인들이 본 예수는 영적존재 이상이었습니다. 눈으로 보았고, 그의 말씀을 귀로 들었고, 만져질 수도 있었습니다. 함께 길을 걷고, 생선을 구워 주시고, 구운 생선을 함께 드실 수도 있었습니다. 고난의 상처 자국도 있었고 만져질 수도 있었습니다. 넷째,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사도 도마는 전혀 예수가 부활할 것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가 부활후 예수를 경험하곤 불신자에서 신자가 되고 결국 순교자가 됩니다. 그가 예수의 부활후 몸을 실제로 만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수의 신성을 인정하고 그를 주인으로 충성맹세한 것을 요한복음은 기록합니다.

2-3: 역사적 진실 입증을 위한 증언의 신빙성을 위해 흄Hume은 증인들의 숫자가 많은가? 똑똑한가? 교육을 많이 받았나? 도덕적 결함은 없는가? 위증이 발견될 때 고난 받을 자세가 되어있나? 공적장소에서 공개적으로 증언했는가? 등을 제시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긍정적으로 답을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중요합니다. 이슬람의 코란은 첫 질문은 아니다, 두번째는 아마도, 세번째는 문맹자였다, 네번째는 아마도, 다섯번째는 잘 모른다, 여섯번째도 잘 모른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몰몬교 창시자 요셉 스미스Smith도 유사합니다. 아니다, 잘 모른다, 아마도, 말도둑이었다, 아마도, 아니다가 정답입니다. 

훌륭한 증거로 채택되려면 사건현장에서 사건을 목격했어야 합니다. 증언자의 숫자가 많을수록 크로스 체킹을 통해 정확도와 신빙성을 더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증인들의 도덕적 평판이 좋지 않으면 좋은 증거로 채택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24장, 요한복음 20장 등을 보면 사도들은 자신들을 사건의 목격자로 기록합니다. 헌법에서 살인죄 적용에는 1명의 증인이, 국가전복죄에는 2명, 유언장 유언집행에는 3명, 구두유언은 7명이 필요한데 이 일곱명이 법에서 지정한 가장 많은 숫자라고 에반스Evans는 지적합니다. 성경은 500명 이상의 증인을 말합니다. 초대교회사에 박해가 많았지만 도덕적 면에서 사도들을 올가미 씌운 기록은 한번도 없습니다. 

3. 부활후 즉시 일어난 결과

3-1: 제자들의 변화는 부활전후가 낮과 밤이었습니다. 확실한 증거 없이 전설이 사실로 바뀌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토마스Thomas는 지적합니다. 3일 안에 예루살렘이 뒤집혔습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무엇이 원인이었을까요?

3-2: 오순절 변화도 중요합니다.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아니한 장소에서 베드로가 예수의 부활을 공포합니다. 유태교로부터의 출교를 감수하며 기독교로 개종한 많은 유태교 제사장들의 결단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3-3: 다소 사람 바울의 개종이 중요합니다. 그의 스승은 유태교 최고 지성인인 힐렐의 손자 가말리엘1세였습니다. 그 역시 대단한 석학으로 탈무드에는 그가 남긴 학적 공헌이 많이 보전되어 있습니다. 탈무드는 그가 죽은 후 ‘토라(모세오경)의 영광이 그쳤으며 순수함과 성스러움이 사라졌다’라고 그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그의 문하에서 교육 받은 수재 바울이 무슨 계기로 기독교로 개종한 것일까요? 빈무덤 사건과 동시대 인물인 그가 사전진상 규명도 없이 순교의 길까지를 걸어갔음은 분명한 원인이 있었을 것입니다.

4. 2천년 역사 속에서 

4-1: 역사를 바꾼 사건 중 교회의 탄생과 보전이 중요합니다. 원인 없는 결과란 없습니다. 오순절이후 예루살렘 교회의 첫 회원들은 이방인들 보다는 주로 유태인들이었습니다. 수천년 전통을 깨고 동족들의 질시 속에 새로운 신앙을 포옹한데는 원인이 있었을 것입니다. 

4-2: 안식일에서 주일을 지킴은 어려운 결정입니다. 예수의 부활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출애굽 때부터 1천 5백년을 지켜온 가장 엄숙한 전통 안식일 지킴이 깨어집니다. 정통 유태인들은 안식일에 지키는 금기사항만도 39가지나 됩니다. 무엇이 전통 중의 전통을 과감하게 깰 수 있도록 했을까요?

4-3: 신약 성경은 예수 부활 사건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도 없었습니다. 에반스는 ‘만일 예수가 무덤 속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의 삶과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들도 그와 함께 무덤 속에 파묻혀 장사 되었을 것이다’라고 지적합니다. 

역사적 사건을 규명할 때 사용되는 방법은 유추법Analogical Determination에 근거합니다. 내 가족이 죽었고, 다른 사람이 죽은 것을 보아 왔고,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논법입니다. 세상 창조나 예수의 부활은 단 한번 발생한 사실로 이와는 유추할 이와 유사한 역사적 사건이 없습니다. 예수의 부활의 역사적 규명은 그가 부활하여 교회의 창시자가 되셨으며, 이 사실은 지속적으로 신자들의 마음 속에 그가 재림하실 소망을 제공하므로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논법에서는 환용 확인법Reciprocal Validation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는 문서들은 죄 사함을 약속하며,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는 그의 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중심으로 교제할 수 있는 바탕이 되며, 지금도 살아서 그가 하나님이심과 부활하셨음을 믿는 자들 가운데서 역사하심을 내적 양심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됩니다.